프로젝트 X - 20부

0 0 0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복도를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벨이 울려서 방문을 열자 신디와 김학수가 나란히 문을 들어선다. 발그레한 신디의 얼굴만 봐도 짧은 시간 즐겼다는 것을 놓칠 수가 없다.



"그냥 잠이나 자지 그랬어?"

"어휴, 잠이 와야죠. 머리 속에 로봇 생각이 가득한 걸요."

"별거 없네. 말로 로봇을 만드는 것은 아니잖나."

"그렇기는 하지만 박사님의 생각을 들으면 그동안 로봇 연구가랍시고 거들먹 거리던 저의 태도가 쑥스러워 집니다."

"하긴 자네 같은 연구자와 구체적인 유닛 하나를 말하는 것 보다는 전체적인 개념을 논하는 것이 도움이 될 걸세."

"저도 개별적인 사안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 떨어지진 않죠. 박사님과 편안한 대화를 하는 속에서 제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많은 사상을 얻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그래, 오늘은 어느 분야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컨트롤 부분에 대해 얘기해 주십시오."

"지능을 갖고 있는 로봇에 대한 컨트롤이라면 너무 막연하니까 사람이 로봇의 위치를 추적하고 그의 행동을 제어하는 일반론적인 부분에 한정해 보면 어떻겠나?"

"그렇군요. 어차피 로봇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인데 인간이 어떻게 개입하여 그런 자율적 이동체를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것은 생각도 못했네요."

"우선 나와 남 사이엔 공간이 있네.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몇몇 사람에겐 텔레파시라는 것을 통해 공간을 뛰어 넘어 의사 전달을 한다지만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그런 능력을 보유하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들만 고려해야겠지."

"그렇다면 유선통신과 무선통신을 이용하면 되겠군요?"

"우선 유선통신은 말 그대로 선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니까 자유 객체의 이동성에 문제가 생기겠지. 그래서 유선통신은 제외해야 하네."

"무선통신은 RF 방식과 위성통신방식이 있는데 위성통신을 사용하면 되겠네요."

"현재까진 그 방법이 제일 좋겠군. RF 방식을 사용하면 구간 구간에 중계기를 설치해서 로봇의 현재 위치까지 릴레이로 명령을 전송해야 하기 때문에 중계탑 설치비가 만만하지 않을꺼야. 이미 설치된 CDMA를 이용한다면 핸드폰을 컨트롤러로 사용해야 될테고."

"하하, 로봇을 핸드폰으로 조정한다는 것은 보안상의 문제점이 많겠네요."

"내가 RF 방식을 써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네. CDMA 는 지구상에서 아주 제한적인 지역만 커버되는 통신방법이라서 대한민국을 벗아나면 로밍서비스가 지원되는 극히 제한된 나라 이외에서는 통제가 될 수 없네. 핸드폰과 같은 단말기로 로봇을 통제하겠다면 아무래도 GSM 방식을 채택해야겠지."

"박사님이 핸드폰을 단말기로 쓰지 않겠다고 전제한 이상 CDMA와 GSM 방식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결국 위성통신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지?"

"위성을 사용하려면 채널사용권을 확보해야될텐데, 로봇만을 제어하기 위한 채널을 내 줄지 의문입니다."

"로봇 개체수가 많아야만 가능한 일이지. 처음에는 아마츄어채널을 이용하면서 개체수가 늘어나는 추세를 봐가며 채널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겠지."

"그런 방법 밖에 없을까요?"

"그렇게 묻지 않았다면 자네를 볼 필요도 없었을걸세."

"있군요? 다른 방법이라면 어떤 것이죠?"

"자네가 새로운 방법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만 아주 혁신적인 방법이 있다네."

"극초단파는 거리가 짧아서 여기저기 중계탑을 세워야할테고, 위성통신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있는거죠?"

"인터넷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네."

"인터넷은 유선 방식이지 않습니까?"

"무선 인터넷을 이용하면 된다네."

"인터넷은 IP 가 고정되어 있다는 가정하에서만 서비스가 지원되는데 로봇의 경우는 자유로운 이동 때문에 위치가 수시로 바뀌어 통신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론 현재의 인터넷은 고정된 장소의 장치 간에만 송수신이 가능한 방법을 갖고 있지. 하지만 로봇의 몸체에 고정 IP를 심어놓고 위치가 바뀔 때 마다 이를 추적하여 교신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네."

"IP 위치추적을 하려면 중계기를 통해 위치파악을 하고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릴레이해야 하는 방법 때문에 결국은 CDMA 방식과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채널을 유한하네. 로봇이 완성될 쯤에는 휴대폰에서 이미 모든 채널을 소진할테니까 더 이상의 장치에 채널을 부여할 수 없게 될걸세.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IP의 경우는 현재는 12자리만 사용하지만 16자리가 표준으로 정착할테고 궁극적으로는 32자리가 표준으로 정착될 것일세.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IP를 전파의 패킷속에 포함시켜 공간에 뿌린다면 동일한 채널 주파수로 수많은 정보가 이동하더라도 자신만의 IP를 흡수하여 판독하는 방식 때문에 무한정 자원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일세."

"아하, 그럼 극히 작은 채널만으로도 무한정의 로봇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 적용되겠군요?"

"이제야 이해가 되나?"

"중계기는 기존의 CDMA 또는 GSM을 이용하거나 위성을 이용하더라도 패킷 해석 방식에 따라 수많은 로봇과 독립된 명령 전달체계를 갖게 된다니 어마 어마한 통신 혁명까지 계획된 프로젝트라고 여겨집니다."

"로봇의 꿈은 어렸을 때는 인형을 말하는 것이었겠고 조금 크면 관절이 움직이는 정도로 만족하는 것일세. 더 나이를 먹으면 프로그램에 의해 정해진 패턴을 이해하고 사람을 대신하여 힘든 일을 해 주는 것을 로봇이라 생각할테고 꿈이 많은 나이가 되면 약간은 지능을 갖춘 로봇을 이해하게 되겠지."

"제가 로봇의 꿈을 가졌던 순서였어요."

"이제 로봇은 사람과 다등한 사고 방식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통신 혁명을 위한 방법까지를 포함한 첨단 종합 문화 산업이라 할 수 있다네."

"박사님이 꿈꾸는 그런 로봇은 인류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문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법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떨립니다."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모든 것은 밝음과 어둠이 있다네. 지능을 갖춘 로봇이 스스로 로봇을 생산하고 결국은 인간의 지혜를 뛰어 넘는 수준에 이른 다면 인간은 멸종의 단계를 걷게 될 뿐이라는 것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된다네."

"로봇은 쇳덩이 일 뿐이거나 바이오 물질에 불과한 것 인데 너무 깊은 우려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자네 자신만을 돌아다보게."

"제가 뭘 어째서요?"

"자네가 생각할 때 자신의 몸은 신이 창조한 인간만의 고유 물질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도 결국은 원소의 결합일 뿐이네. 양자와 중성자와 전자의 적절한 결합에 의해 원소가 구성되면 또 다른 결합 법칙에 따라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그런 것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분자들이 결합하여 자네의 육신을 만들었다고 보면 되는 것일세. 그런 때문에 비록 몸의 구성이 쇠로 되었던 생체로 되었던 그것은 차별화될 이유가 없는 것이지."

"박사님은 무생물도 생물과 구별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인가요?"

"근본을 따져보게. 그 개체들이 존재하는 의미를 그들 스스로 우리에게 제시하던가? 단지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면서 자기들이 편리하도록 붙힌 이름에 불과하네. 그렇다면 휴먼로봇의 지능이 스스로 발전하여 인간의 지배로부터 벗어났을 때 그들의 육신이 쇠덩이었든 생체였던 무슨 의미가 있나?"

"무서운 일이군요?"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때는 모든 것이 인간답네. 하지만 로봇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다면 그들의 눈엔 인간이 수많은 객체 중 조금 색다른 객체에 불과하겠지. 그들이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의 육신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너무 천박한 것일 뿐이고 그들의 육신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만이 세상의 가장 고귀한 것들이 되었을 테니까."



김학수와 이야기 하는 사이 숙은 신디에게 두 사람의 얘기를 동시 통역하고 있었다. 신디는 알 듯 말듯한 얘기에 귀 기울이며 자신만의 이해 속에서 가끔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박사님, 오늘은 너무 머리가 아픕니다. 통신 혁명에 해당될 인터넷 IP의 무선 패킷 방식만으로도 거대한 사업이 될 것 같은데 인간의 육신과 로봇의 구성물이 동일 선상에서 거론 되는 것은 가슴으로 받아 들이기엔 제가 너무 미숙한 것 같습니다."



"받아 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네. 다만 통신 혁명이 곧 일어날 것일세. 핸드폰에다 모든 기능을 덕지덕지 붙이는 것만으로 유비쿼터스가 된 듯이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원천기술에 대한 눈을 전혀 돌리지 않는 상업적인 사람들 뿐이네. 적어도 핸드폰에 신용카드 기능과 신분증 기능을 포함하여 교통카드를 넣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핸드폰일 뿐일세. 자네는 앞으로 나를 도와야 하네. 내가 중국쪽에 서 있게 되든 캐나다에 남게되든 또는 미국에서 일하게 되는 무슨 상관이 있겠나. 꿈을 가진 사람은 죽을 때까지 몸을 아끼지 말고 꿈을 쫒아야겠지. 동의하나?"



"동의 합니다. 처음에 박사님을 만났을 때만해도 중국에 모셔서 제가 꿈꾸던 로봇을 완성하는 볼모로 삼을 계획이었지만 몇일 박사님 옆에 있는 동안 어떤 한 나라의 욕심만으로 박사님을 구속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꿈을 꾸는 몽상가일 뿐이야. 어쩌면 자네 같은 훌륭한 과학자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던 것일지도 모르지. 나는 적어도 자네가 통신 혁명을 포함하여 많은 일을 함께 해 주기를 바랄 뿐이네."



김학수는 감동의 눈 빛이 되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 속을 정리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런 그와 신디를 돌려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날이 밝았다. 하얀 눈이 창 밖에 수북히 쌓여 있었다.

김학수와 신디가 먼저 로비의 식당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숙과 나는 일행과 만나 호텔 내의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자네, 밤엔 잘 잤나?"

"박사님 생각에 잠을 못 이뤘습니다."

"그러지 말게.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되면 더 복잡하고 난해한 일들로 시간을 보내게 될텐데 그때마다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의 체력이라면 이번 일엔 손 떼는게 자네의 건강에 좋을테니까."

"아닙니다. 밤새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에 저도 국적을 떠나 박사님의 손발이 될 것을 결심했습니다."

"자네 같은 정열적인 과학자가 수없이 많이 필요하다네. 자네가 나의 계획을 이해했다면 유능한 과학자들의 명단을 점검하는 일을 맡아주면 좋겠네."

"알겠습니다. 중국으로 귀국하는 즉시 주변의 유능한 친구들을 먼저 물색하겠습니다."

"아이, 낮엔 즐겁게 놀기만 하자." 숙은 다소 지루한 듯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그래, 오늘을 스키장에 가기로 했지?"

"밤새 눈이 많이 내려서 차로 이동하는 것은 불편할겁니다. 차라리 눈 덮힌 주변을 자유롭게 구경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것도 괜찮겠군. 이렇게 험하게 변해버린 산맥을 차로 헤멘다는 것은 아마츄어 관광객에겐 무리가 따르겠어."

"그래요. 우리 한 낮까지만 관광하고 미국 쪽으로 돌아가요."

"그럴까? 캐나다는 너무 아름답고 넓지만 몫져서 놀러오기 전에는 겨울 관광엔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으니까."



호텔을 포함하여 폭포 주변과 걸어 다닐 수 있는 좁은 공간 마다 각자의 발자욱을 찍어대며 세상사 복잡한 일과 잠시 떨어져 있는 사이에 해가 중천에 걸쳐지고 있었다. 아침에 눈 덮혔던 도로는 제설차가 몇 번 왔다갔다 하더니 깨끗한 모습으로 아스팔트를 드러낸다. 호텔에서 짐을 찾아 차에 싣고 우리는 예정보다 하루 빨리 미국쪽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캐나다 국경을 넘기 위해 여권을 제시하니 리젝트가 떨어졌다. 담당 공무원이 차에서 내려 잠시 들어와 달라고 정중히 권하므로 일행은 차를 주차시키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난로의 온기가 온몸에 다가온다.



"박사님 일행이 어떤 문제가 있어서 리젝트 된 것은 아닙니다."

국경을 담당하는 직원이 쇼파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저도 내용은 모르지만 고위층으로부터 박사님 일행이 국경을 통과할 때 연락 줄 것과 잠시 머물도록 지시를 해 놨기 때문에 리젝트 처리를 한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잔이 놓였다. 나는 천천히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코 끝으로 향기를 맡아 본다. 진한 블랙커피 향이 코끝을 자극하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빠르게 머리 속으로 전달됐다.



어차피 국경을 통과하려면 치러야 할 될 의례적인 것이긴 해도 캐나다 쪽에서는 어떤 제안을 해 올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

0 Comments